200507272318
이규태의 <역사산책> - 반구정
반구정(伴鷗亭)
갈매기와 더불어 산다는 반구정(伴鷗亭)에는 5백여 년 전과 다름없이 갈매기가 날아오고 있었다. 옛 선조들에게 있어 갈매기는 산수의 상징이었다. 워낙 영물이라 사람의 기심을 잘 알아차려 만약 산수에 뜻이 없는 자가 산수에 뜻이 있는 양하여 갈매기와 친하려 한다면 절대로 가까이 날아오지 않는다 한다.
이를테면 벼슬밭에서 갖은 영화를 다 누린 세조정난 공신 한명회가 산수에 산다는 허명을 얻고 싶어 한강변에 정자를 짓고 갈매기와 친한다는 뜻으로 압구정(狎鷗亭)이라 이름하였다. 그러나 그의 기심을 알아차린 갈매기들은 한 마리도 이 정자 근방을 날아오지 않았다 한다.
그런데 필자가 지금 올라선 이 반구정에는 갈매기가 처마를 스치고 있으니 별일이다. 산수와는 아랑곳없는 한 속인 앞에서도 날고 있으니 정녕 현대의 갈매기는 정자에 오른 사람의 기심을 헤아리기 이전에 자신의 기심을 잃고 있음인가.
그렇지 않다면 5백 년 전 이 반구정에 살았던 정자 주인의 덕이 너무 커서 그 후광 때문에 후대에까지 반구를 해주는 것일까. 아니면 이 정자 주인의 청백함이며 상고(尙古)함, 그 도량을 기리기 위해 찾아온 것을 알고서 날아온 것일까.
60여 년간 관직에 있었고 그중 27년을 정승자리에 있으면서 조선왕조의 초기 정치 기반을 안정시켰던 황 희(黃喜), 그분의 정치적 공덕보다 인간됨에 홀려 찾아든 필자를 알아차리고 날아든 것일 게다.
황 희의 인간됨에 관한 일화들은 담담한 한폭 한폭의 수채와만 같다. 그 수채화로 필자는 지금 구절 병풍(九折屛風)을 환상 속에 만들어보고 있다.
그 제 1절(一折)은 꾸밈없는 그의 사람방이다. 아손(兒孫)과 동복(童僕)들이 공(公) 앞에서 놀고 있다. 그중 한 놈은 공의 수염을 잡아당기고, 어느 한 놈은 얼굴을 만지고 있는데 공의 안색은 자약(自若)하다. 그 소동 틈에서 붓글씨를 쓰고 있다. 종의 아이 하나가 옆에서 놀다가 공문서 위에 오줌을 싸고 있다. 공은 아무런 노여운 빛없이 손으로 그 오줌을 훔치고 있다.
제 2절 역시 그의 사랑방이다.
당시 정언벼슬이던 이석형(李石亨)이란 선비가 방문하고 있다. 공은 <통감강목(通鑑綱目)>이란 책을 내놓으며 그에게 제목을 쓰게 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여종이 주안상을 차려 들고 왔으나 글씨를 쓰느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여종이 언짢은 표정을 짓자 공은 웃으면서 술을 데워오라고 일렀다. 그런데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어린아이 몇 명이 거침없이 뛰어 들어와 공의 무릎에 올라앉아 음식을 손가락으로 마구 집어먹는다. 그들은 종의 자식들이었다.
이석형이 놀라 입을 딱 벌리자 공은 껄걸 웃으며 「종의 아이는 사람이 아닌가」라고 말한다.
제 3절은 공의 집 창밖에 있는 복숭아나무이다.
이웃집 아이들이 그 복숭아나무에 매달려 따먹고 있다. 공이 들창을 열고 얼굴을 내밀고 나지막하게 말한다. 「다 따먹지 말아라. 나도 맛을 좀 보아야지.」나무랄 줄 알고 놀랐던 아이들이 이 온화한 목소리에 안심하고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따먹어 버렸다.
제 4절의 수채화는 배나무가 있는 그의 동산이다. 동네 소년 하나가 돌팔매질을 하여 무르익은 배가 가득 떨어져 있다.
이때 공이 큰소리로 시동(侍童)을 불렀다. 돌팔매질을 하던 소년이 놀라 담 밑에 숨어서 가만히 들어본다. 공은 시동에게 그릇을 갖고 오게 하여 떨어진 배를 손수 주워 담더니, 그 소년을 찾아서 갖다주라고 한다.
제 5절은 공의 집 으슥한 마당 구석이다. 젊은 여종과 사내종이 지나치게 희롱을 하고 있다. 공이 지나다가 보고 웃자 두 종은 공 앞에 엎드려 대죄(待罪)를 한다.
공은 「노비도 역시 하늘이 내린 백성인데 어찌 천성까지 함부로 다스리리오」한다. 공은 노비의 인간성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요지의 글을 써서 자손만대에 전해 내리도록 자신의 신념을 몸소 실천한다.
제 6절의 배경은 공의 아들인 호조판서 황치신(黃致身)의 새로 지은 집이다. 집들이로 만조백관(滿朝百官)을 초대한 잔치에 공도 그 집을 찾아든다. 공은 집안을 두루 돌아보더니 아무말 없이 나가 버린다. 그러자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백관들이 불안해하면서 하나 둘 자리를 떠난다.
이에 황치신은 크게 뉘우치고 그 집을 버리고 따로 조그마한 집을 마련한다.
제 7절은 공의 초라한 집에 세종 임금이 아무도 모르게 방문하는 장면이다. 임금이 공의 방안에 들어와 보고 놀란 얼굴을 하고 있다. 아무리 청렴한 생활을 한다지만 화려한 가구는 그만두고라도 문갑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거기다 화문석은커녕 거적 같은 멍석을 바닥에 깔아놓고 책을 쌓아 놓았다. 상상도 못할 일이라 세종의 놀라움은 더욱 크다.
제 8절은 여종의 싸움에 대한 유명한 공의 도량이 그려진 수채화이다. 공의 방문 앞에서 여종 둘이 서로 고함을 지르며 싸우고 있다. 싸우던 한 여종이 들어와 울면서 하소연하자, 「그래, 네 말이 옳구나」한다. 그러자 다른 여종도 울면서 항의한다. 이에 공은 「그래 그래, 듣고 보니 네 말이 옳구나」한다. 이러한 광경을 보고 있던 공의 조카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한다. 「무슨 일이든 잘잘못이 있기 마련힌데 양쪽이 모두 다 옳다 하시니, 그래서야 어찌 아랫사람들이 아저씨를 믿고 따르겠습니까.」그러자 공은 「네 말도 옳구나」한다. 공사(公事)에는 날카로워도 사사(私事)에는 너그러움의 품도가 훈훈하게 배어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9절은 많은 유생들이 오고가는 서울의 길거리이다.
공이 만난 사람들은 세종 임금이 숭불로 기울자, 모두 돌아가 중이 되고자 한다고 상소하고 권당(捲堂) 시위를 한 성균관 유생들이다. 이에 호응하여 집현전(集賢殿)의 학자들도 간언 끝에 집현전을 비우기에 이르렀다.
이때 임금은 눈물을 흘리며 공에게 말하였다. 「집현전 학사들이 모두 나를 버리고 갔으니 장차 어찌하면 좋겠소.」그러자 공은 몸소 여러 학자의 집을 두루 돌아다니며 집현전에 나오기를 간청한다.
그렇게 설득하고 다니는 공이 한길가에서 유생들과 만나는 장면이다.
유생들은 공을 앞에 두고 면박을 한다. 소위 정승이 되어서 일찍이 임금의 그릇됨을 바로잡지 못하였다고.
공은 이 면박에 조금도 노여워하지 않고 기뻐하는 표정을 짓는다. 왜냐하면 이 유생들의 기개가 앞날에 빛을 던져주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임금의 숭불에 상소를 하고 집현전과 성균관을 정상화시키는데 공의 이같은 거시적인 안목이 없었던들, 극단으로 치닫는 배리(背理)의 화는 나라를 어지럽히기에 충분했다. 그러기에 후세의 당쟁과 사화 때마다 임금들이 한탄하기를 「방촌( 村 : 黃喜의 號) 같은 신하만 있었던들…」하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한다.
지금 반구정 사방의 벽에는 이같은 환상의 구절 병풍이 파노라마처럼 둘려 있다. 그리고 그 복판에 여든 살이 넘었을 때의 풍모인 <홍안백발 망지약신선(紅顔白髮望之若神仙)=”“>의 공이 남루한 옷차림으로 앉아 있다. 갈매기가 어깨에 앉고 혹은 무릎에서 퍼드덕거린다.
구절 병풍에 어수선하던 유생과 노비와 동복, 그리고 소년의 현란(絢爛)이 갈매기로 승화되어 난다.
문헌에는 주춧돌만 남아 있어 갈매기도 날아오지 않는다고 되어 있으나, 반구정 아래에 사는 후손들이 20여 년 전에 그 주춧돌에다 옛 모습을 되살려 놓았다. 지금 갈매기가 날아옴은 이 담담한 수채화의 구절 병풍을 황상 속에 투시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갈매기는 기심에 예민하니까.
- 2005/07/27 23:18 에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