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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여행기 - 3.시안

  1. 시안 (서안 : 西安)

    오랜 중국의 역사에서 여러 왕조의 수도로 번창했던 도시는 여럿 있다. 그러나 그 중 최고의 고도(古都)를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 시안을 들 것이다. 이미 진나라 때 함양이라는 이름으로 중심이 되었고, 전한(前漢)의 수도이자 당나라 때 실크로드의 출발지로서, 화려한 국제도시로서 최전성기를 누렸던 시안.

    이제는 산시(陝西)성의 성도로서 그 명맥을 잇고 있는 시안이다. 당나라 때 인구 백만을 헤아릴만큼 번성했던 시안은, 현재는 중국의 여러 도시들에 비해서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도시의 중심부를 옛 성곽이 둘러싸고 있는데다 교외와 도시 곳곳에 역사 유적이 많이 남아 있어서 관광하기에 정말 좋은 도시이다.

    뤄양에서 기차로 시안까지 오는데 6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동안 우리 일행은 모두 기차 복도에 서 있어야 했다. 6시간은 우리 나라에서는 서울에서 부산 가는 시간보다 1시간 반이 더 걸리는 시간이지만, 중국에서의 기차여행으로는 짧은 편이다. 게다가 뤄양에서는 표 구하기도 어려워 울며 겨자먹기로 입석표를 산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탄 기차가 상당히 더러웠다는 점이다. 가격이 싼 칸을 고른 탓에 중국의 서민들과 섞여 그들의 채취와 쓰레기 냄새를 맡으며 기차에 올랐다. 바닥에는 온통 오물투성이라 우리나라에서처럼 어디에 앉지도 못하였다. 장장 6시간을 완벽하게 서서 오고나니 이제는 우리 나라 기차에서 입석은 아무 것도 아니겠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기차를 내려서 역을 나서니 커다란 광장과 가운데로 뚫린 길이 보인다. 미리 알아간 곳을 물어물어 찾아가 숙소를 정하고 시안 구경 시작.

    우선 이 도시 중심부의 특징을 얘기해야겠다. 이 도시의 중심부는 앞서 말한 대로 옛 성벽으로 둘러쌓여 있다. 지도에서 보면 이 성벽은 완벽한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거기다가 구획 정리가 웬만한 현대 도시 뺨치게 잘 되어 있고, 실제로 남북으로 뻗은 각 도로는 제1로, 제2로, 제3로… 이런 식으로 번호로 구분하고 있다. 아마도 이런 정리는 당나라 시대에 거의 완성된 듯 한데, 과연 발해가 옛 장안을 본떠 자신들의 수도를 계획했다는 말이 실감났다.

    도시의 정중앙에는 종루가 있다. 아마도 우리 나라의 종로와 비슷한 개념일 것이다. 종루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도로가 뻗어있고, 동서남북 각 방향으로 큰 문이 나 있어 도로가 외곽으로 연결된다. 종루는 시내 구경을 할 때 사진을 찍어뒀는데, 도시의 중심에 있을 건물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아마도 그 옛날에는 저기서 종을 쳐 시간을 알리거나 명령을 내렸으리라.

    시안은 그 오랜 역사만큼이나 볼거리가 많이 있다. 물론 모든 것이 시안 시내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 중 유명한 것이 바로 진시황의 무덤과 병마용(兵馬俑), 그리고 중국인들에게 상당히 유명한 듯한 화청지라는 온천 등이 도시 주변 곳곳에 산재해 있다. 게다가 도시 내에도 갖가지 역사박물관과 옛 거리, 도심을 둘러싼 성벽 등이 있어 관광객을 즐겁게 해 준다.

    그 중 뭐니뭐니해도 가장 유명한 것은 세계적으로 손꼽는 유적인 병마용일 것이다. 병마용까지는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나야 워낙 차만 타면 잠드는 통에 얼마가 걸리는 지 정확히 알 길이 없다. 그 곳에 간 날은 마침 날씨가 맑고 햇빛이 눈부신 날이어서 선글라스를 갖고 갔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으니 커다란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병마용이 눈에 들어왔다. 표를 사고 안으로 들어가서 건물에 들어갔다. 그런데 밖에서는 선글라스를 끼다가 건물에 들어가면 어두워져 벗고, 다시 조금 후에 밖으로 나오면 다시 써야하는 통에 무척 귀찮았다. 처음에는 그냥 선글라스를 벗지 말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어두운 건물 안에서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아서 귀찮음을 감수하기로 했다.

    건물이 어두운 것은 그 안에 바로 병마용 발굴 현장이 있기 때문이다. 즉, 발굴된 현장 위에 바로 건물을 지어 구경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그래서 건물에 들어가면 아무 것도 없고 단지 발굴하는 현장이 보일 뿐. 이런 건물이 3채가 있는데, 각각은 따로 발굴되고 있다. 사실 이 중에서 가장 압권은 입구에서 똑바로 가면 들어갈 수 있는 1호 건물인데, 우리는 엉뚱하게도 옆으로 꺾어 들어가는 바람에 두 번째로 큰 3호부터 구경하게 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다행인 것이, 아마도 1호를 가장 먼저 보았다면 나중의 두 개는 시시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사실 나머지 두 개 역시 상당한 규모이긴 하지만, 1호의 엄청난 크기 앞에는 별 것 아니게 느껴질 만 하다.

    1호분의 크기는 어림잡아 가로 3~40미터, 세로 1백 미터는 족히 될 규모였다. 그 안에 평균 신장 178cm라는(나보다도 크다. 옛 사람들은 지금보다 키가 작았을 텐데도 이들의 크기가 이렇게 큰 것을 보면 진시황의 권력과 군대가 얼만큼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도제 병사들 수백 명이 빽빽히 도열해 있었다. 게다가 아직 이곳은 발굴이 완료되지 않아 뒤쪽에는 흙으로 덮인 공간도 많이 남아 있었다. 대체 이 넓은 곳을 언제 다 발굴한단 말인가.

    수많은 병사들과 말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뤄양에서 만났던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보니 뭔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던 중이었다. 미술이 전공이라며 그린 것을 보여달라고 하니 선선히 보여주었다. 말의 머리를 스케치하던 중이었는데,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의 솜씨를 보니 다시금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평소에도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 오던 터였다.

    병마용을 나와 다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이번에는 용케 잠들지 않고 돌아왔는데 오는 도중에 진시황의 무덤이 멀리 보였다. 간 김에 들러보았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일단 병마용을 본 것으로 만족하고 아쉬운 풍경을 뒤로 했다.

    돌아오는 길목에 또 다른 명소인 화청지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원래 온천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중국 사람들도 이곳을 찾는 것 같다. 게다가 역사적으로는 그 유명한 당현종과 양귀비가 즐겨 찾던 곳이라 한다. 현종 치세의 장안은 아마도 최전성을 구가하고 있었겠지.

    건물 배치가 상당히 복잡하게 되어 있는 이곳에는 곳곳에 현종이나 양귀비의 전용 목욕탕이 있는데, 그 종류도 무척 다양하다. 대체 목욕탕이 여러 개 있으면 뭐가 좋을까, 현대 서민의 머리로는 이해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은 탕 안에 물은 하나도 없다.

    비단 목욕탕 때문이 아니라, 이곳은 경치는 무척 아름답다. 연못 주변에는 나무가 우거지고, 그늘에는 정자도 있다. 더운 여름에 시원하게 들러보기에는 안성맞춤인 장소다. 오히려 현종은 겨울의 추위를 피해 이곳을 찾았다던데, 과연 눈이 내리는 풍경은 어떨는지.

    시내 구경을 하던 도중에 뜻밖의 가게를 만났다. <소고기김밥>, <오징어김밥>, <게맛살김밥>, 그것도 분명한 한글로. 이런 곳에 왠 김밥집이? 하고 다가가보니 주인은 다름아닌 한국인 아주머니. 반가운 마음에 (그리고 그리운 김밥을 부르는 식욕 때문에) 김밥을 시키고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래는 안양에 살았었는데 남편의 일 때문에 중국으로 건너왔다고 하셨다. 중국 사람들이 김밥을 좋아하느냐고 묻자 아직은 김밥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고 한다. 우리가 무척 반가운 손님이었을지도.

    마침 화청지를 구경하기 전이어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아주머니 말씀이 재밌었다. 유명한 온천이라는 말에 모처럼 여독을 씻어볼까 하는 우리들에게, 중국 목욕탕은 가능하면 들어가지 말라고 하였다. 이유를 물으니, 중국 사람들이 아직 목욕 문화에 낯설어서 종종 욕탕에서 더러운 행동을 한다나. 그 말 한 마디에 우리들의 피로회복 계획은 무산되어 버렸다. 비록 아쉽기는 이루말할 수 없지만, 비싼 이용료 내고 차마 더러운 욕탕에 들어갈 수는 없는 일. 목욕은 귀국까지 보류키로 했다.

    다음 날도 우리는 김밥집을 찾았다. 모처럼 입맛에 맞는 음식인데다, 이런저런 얘기도 더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침 그때는 아주머니의 아들도 있었는데, 중국에서 공부 중인 모양이었다. 중국어도 꽤 능숙하고. 덕분에 우리는 그 형의 도움으로 돌아가는 길에 수박과 복숭아 등을 가격을 제법 깎아서 살 수 있었다. 김밥도 맛있었고. 아주머니 김밥 많이 파세요.

    역사 유적으로 유명한 도시인데, 박물관 한 번쯤 찾아가는 것은 기본. 안내 책자를 보니 커다란 박물관이 두 개 있는데, 그 중 좀 더 괜찮을 듯한 곳을 택했다.

    아무래도 이곳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역사의 중심지였던 터라, 여러 가지 유물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 그 유물들도 시대별로 잘 정리를 해 놓았다. 그나마 한자가 좀 익숙한 나는 이런 저런 설명을 보기도 하고, 그 특성을 파악해 보기도 했는데, 이런, 첫 번째 방부터 실수를 하다니. 입구와 출구를 헷갈려서 주(周)나라 시대부터 고대까지의 유물을 거꾸로 구경한 것이다. 어쩐지 가면 갈수록 이상한 느낌이 들더라니.

    이후의 구경도 상당히 재밌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이 당삼채(唐三彩)인데, 막연히 말로만 듣던 것을 실제로 보는 기분은 참으로 좋은 것이었다. 게다가 이 도시는 당나라 시대 이후는 이전만 못한 세월을 보냈기 때문에, 발굴되는 유물도 당나라 이후는 조금 별볼일 없다. 특히 명, 청 시대에는 베이징이 국가의 중심이 되면서 이곳은 어찌 보면 변방의 외진 곳으로 전락했을 법 하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내가 가장 기대를 걸고 있던 것은 바로 도심 주변을 둘러싼 성벽이다. 난 원래 이 성벽이 당대의 성벽이라고 생각했었다. 워낙 당나라 시대의 장안이 유명한데다, 장방형의 성벽과 깔끔한 구획 정리 역시 당대의 성과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현재의 성벽은 기존의 성벽 위에 명대에 증축한 것이라 한다. 안을 파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기본 골격은 있는 셈이니 만족하기로 하고.

    셩벽 위에 올라서니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성벽 자체도 멋지지만, 주변의 경치 또한 볼만하다. 산성이 대부분인 우리 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성곽의 모습이라 구경하는 맛이 났다. 이곳저곳 사진을 찍는데 어느 새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마침 그때, <고대무기전시관>이라는 화살표가 우리가 가는 방향의 반대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런 통탄할 일이 있을까. 박물관에서도 얼마 보지 못했던 옛 무기를 원없이 구경할 좋은 기회였는데, 이런 것이 있는 줄 미리 알았더라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서 찾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주위는 어두워지는 중이었고, 다음날이면 시안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라 눈물을 머금고 다음을 기약했다.

    좀 걸어가니 성벽의 남문이 나왔다. 이것은 원래 예전에 대문으로 쓰던 문이지만, 오늘날에는 쓰이지 않는다. 처음 들어가는 입구에 좀 작은 문이 하나 더 있는데, 도로는 그곳을 통해 나 있다. 덕분에 이 거대한 옛 문은 그 모습을 제대로 보존하고 또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역사 유적에 대한 이런 배려를 볼 때마다 건물과 도로에 둘러싸인 우리 나라의 대문들이 불쌍할 따름이다. 얼마 전에는 남대문의 일부가 파손되었다는 뉴스도 접했는데. 이 문은 특이한 점이 이중 옹성으로 앞이 방어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중 옹성은 본 적이 없던 터라 신기할 따름이었다. 옹성에 서서 문을 바라보니 이 또한 장관이라, 이미 어두워진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진을 찍어댔다.

    넓은 벌판에 지어진 높이 십수미터의 성벽에, 옹성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성문, 그리고 높은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안 시내의 야경, 이 모든 것들이 정말 멋진 광경이었다. (성벽과 성문은 어쩌면 나 홀로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이들을 바라보며 언젠가 나중에 다시금 시간을 내어 찾아오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내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마음에 들었던 곳이 바로 이 시안이다. 그 이유는 물론 이곳의 화려한 유물유적이 가장 크겠지만, 어느 정도는 이전 방문했던 뤄양에 크게 실망한 탓이기도 하다. 고대 왕조의 중심지로서 시안과 쌍벽을 이루는 뤄양. 그러나 이제는 그 화려했던 옛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반면 시안은, 화려했던 옛 모습을 이제는 기품있고 차분한 고도의 분위기로서 간직한 채,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적인 도시의 모습으로 나아가려는 생동감을 훌륭히 조화시키고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여러 중국 도시들에게 있어 발전의 한 표본이 될 수 있으리라.

    우리의 중국 여행은 출발부터 지금까지의 여정을 기점으로 하여 이후의 것과 구분된다. 이제까지 베이징, 뤄양, 시안의 도시를 거치면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화북의 도시들을 둘러보았다. 중국은 북쪽과 남쪽이 문화나 생활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이제 시안을 끝으로 북쪽을 떠나 남쪽의 중국을 여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그 둘을 갈라놓는, 동시에 완충역할을 하는 도시를 방문하게 된다. 그곳이 바로 기이하고 아름다운 산세와 강수로 유명한 구이린(桂林), 남쪽 여행의 출발지이다.

  • 2005/08/30 22:46 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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