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9160009

프로젝트 혹은 프로젝트 매니저

프로젝트라는 말을 처음 써본 것은 대학 학부 때였다. 대부분 공대 수업이 그러하듯이 전산학과 수업 역시 본격적으로 전공수업이 시작되는 2학년부터는 개인 과제가, 3학년부터는 팀단위 프로젝트를 과제로 하여 점수를 매기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마지막 4학년 과목은 이론수업보다는 대부분 실제로 팀을 이루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비중이 더욱 커졌고, 어떤 과목은 과목 자체가 하나의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인 경우도 있었다. 많게는 다섯 명까지도 팀을 이루어 하나의 주제를 선정해서 일정을 짜고 역할을 분담해서 각자 맡은 부분을 합치면 최종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 이상적인 프로젝트의 모양새이겠지만, 아무래도 할 것 많고 놀 것 많고 수업도 많은 학부생의 입장으로서 진행 과정이 원활하기를 기대하긴 다소 무리였고, 때문에 내 기억으로는 항상 학기 막바지에 이르러 함께 모여 머리를 싸매며 고민하고 때로는 언쟁을 벌인 경우가 열에 아홉이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창피한 프로젝트를 몇 개 해보고 난 뒤, 어찌어찌 감사히도 졸업장을 받고 대학원에 입학. 연구실에 들어와서는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라는 녀석을 제대로 해보리라 마음먹었지만, 2년 간의 시간은 그 목표를 이루기에는 다소 짧았나보다. 처음 1년, 그 중에서 첫 학기는 수업과 연구실 적응에, 다음 한 학기는 무엇 하나 결과물 없는 (아니, 참혹한 결과물만 내놓은) 프로젝트 성과, 그리고 다가온 졸업논문의 압박. 결국 대학원에서 이루어놓은 것이라고는 허접하기 짝이 없는 졸업논문 한 편 뿐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 당시 상황이 제대로 프로젝트를 경험하기에는 시운이 안 따랐다고 감히 궁색한 변명을 해 보고 싶다. 일반적으로 대학원의 프로젝트는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인 박사과정 학생이 프로젝트 매니저를, 배우는 과정의 석사과정 학생이 보조를 하며 경험을 쌓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만, 당시 내가 했던 프로젝트를 담당해야할 선배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연구실을 비운 상태였다. 결국 프로젝트를 통째로 떠안은 것은 나와 함께 들어온 석사동기 형 뿐이었고, 경험이 일천한 두 사람은 좌충우돌 뭐가 뭔지도 모르는 채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결국 남은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었고.

그렇게 다소 후회스러운 몇 년을 지내고 입사한 지금, 다시금 프로젝트 수행이라는 불가피(不可避)한 존재와 맞닥뜨렸다. 그것도 이번에는 프로젝트 매니저라는 위치에서. 사실 회사에서야 누구나 과제를 수행하고 대부분 혼자 하는 것이니 실무자 치고 프로젝트 매니저 아닌 사람이 없지마는, 그래도 역시 이름이 주는 부담감과 기대감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처음 한동안은 파트장님의 보조를 받아가면서 시작했지만, 차츰 스스로 결정해야 할 일이 많아지게 되었고, 프로젝트를 마친 후 책임도 져야하는 위치에 있게 될 것이다. 개발 자체야 계약 업체에서 한다해도, 그것을 관리하고 일정을 관리하고 전체 시스템을 파악해야만 하는 업무가 매니저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인 점은, 직접 개발 경험도 전무하고 프로젝트 수행 경력도 거의 없는 내가 과연 프로젝트 관리라는 직무를 수행할 능력을 충분히 갖추었는가하는 우려이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후 근 한달 간 일해오면서, 주변 사람들에게서 “열심히 해보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는 격려의 말도, “어얼~ 신입사원이 벌써~” 하는 놀림도 받으면서, 기왕 맡게된 일이니 멋지게 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멋지게 해치웠어”라는 최상의 칭찬보다도 “아쉬운대로 한 사람 몫은 해낼 수 있게 되었다(성장했다)”는 말이 더 듣고 싶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팀내 과제 목록 문서의 한켠 PM란에 내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조금은 으쓱해졌다. 조만간 시간을 내어서 프로젝트 매니저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는 책을 찾아봐야겠다.

  • 2005/09/16 00:09 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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