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061033

<무라카미 라디오> - 리스토란테의 밤

  • 이 글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무라카미 라디오="">에 실린 글을 제멋대로 번역한 것입니다.

어느 특별한 날에, 한 특별한 여성과 함께, 아오야마에 있는 이탈리아 음식점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하였다. 라고는 해도 결국 집사람과 함께, 결혼기념일을 축하한 것 뿐입니다. 뭐야. 재미없네요. 재미없지 않습니까. 뭐 아무래도 좋지만. 조용한 가게입니다.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도 적당히 떨어져 있고, 두툼한 와인리스트가 있으며 본격적인 소믈리에도 나오는. 새하얀 테이블보와 촛불. 음악은 없음. 기분좋은 정적과 두 사람의 대화가 배경음악을 대신한다. 요리는 북이탈리아풍으로, 손이 많이 가는 송아지 커틀릿이 나온다. 대충 분위기를 아시겠나요? 말하자면 좀 그럴듯한 리스토란테(레스토랑?)이다. 음식값이 싼 편도 아니며, 그리 자주 갈 수 있는 가게는 아니다. 우리가 테이블에 앉은 그 때, 조금 떨어진 자리에 젊은 남녀가 있었다. 아직 이른 저녁이었고 손님은 우리 부부와 그 사람들 두 자리 뿐이었다. 아마도 남자는 20대 후반, 여자는 20대 중반으로, 둘 다 잘생기고 도회적으로 깔끔한 옷차림을 한, 상당히 스마트한 분위기의 한 쌍이었다. 와인을 고르고 요리를 주문하고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게되다보니 (저절로 들려온 것이긴 하지만) <이 두="" 사람은="" 깊은="" 관계가="" 되기="" 직전이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내용은 지극히 보통의 세상사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목소리의 톤으로 대개의 사정은 짐작이 가능하다. 나도 일단은 소설가 나부랭이 축에 속하는 지라, 그런 상황의 남녀의 심리는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남자는 <슬슬 꼬셔볼까="">하고 생각하고 있고, 여자쪽도 <받아줘도 되지="" 않을까="">하고 생각하고 있다. 잘 진행되면 식사를 마친 후 어딘가로 잠자리라도 같이 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테이블 가운데에는 페로몬의 하얀 안개가 자욱하게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우리 테이블 쪽은, 결혼해서 30년도 지난 터라 페로몬은 거의 떠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행복해 보이는 젊은 커플은 옆에서 보기만 해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아름다운 분위기도, 프리모-피아토가 나온 순간 문자 그대로 안개구름 사라지듯(雲散霧消) 없어져 버렸다. 무슨 얘기냐 하면, 남자가 <주룩주룩주룩!> 하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면서 파스타를 목구멍 안쪽으로 쑤셔넣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정말로 압도적인 소리였다. 계절이 바뀌는 때 단 한 번, 지옥의 대문이 열리고 닫히는 순간의 소리 같았다. 그 소리를 듣고 나도 얼어붙었고, 우리 집사람도 얼어붙었고, 웨이터도 소믈리에도 모두 얼어붙었다. 맞은 편에 앉은 여자도 확실히 얼어붙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숨을 삼키고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남자만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룩주룩주룩, 정말로 행복한 듯이 파스타를 계속 넘기고 있었다. 그 커플은 나중에 어떤 운명에 도달했을까. 지금도 가끔씩 신경이 쓰인다.

  • 2005/11/06 10:33 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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