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092355

<무라카미 라디오> - 감땅의 문제는 심오하다

  • 이 글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무라카미 라디오="">에 실린 글을 제멋대로 번역한 것입니다.

세상에는 영구운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물리학의 일반상식이지만, 반영구적운동 혹은 <영구적인 것="" 같은="" 운동="">은 제법 있다. 예를 들면 감땅(원문에는 枾(카키)삐-, 즉 감을 뜻하는 '카키'와 '피너츠'의 앞글자인 삐를 합친 단어임. 우리말로 적당한 표현이 없어서 '감땅'으로 씀)을 먹는 것처럼. 감땅이 뭔지는 알고 계시죠? 매콤한 감씨와 달콤한 향기의 땅콩이 섞여 있어서, 적당히 배분해서 같이 먹는다. 누가 생각해 낸 건지는 몰라도, 정말 좋은 생각이다.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조합이다. 처음 생각해 낸 사람에게 노벨평화상을 주자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설령 그렇게 말해도 아무도 상대를 안해주겠지만) 탁월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감씨가 만담으로 치자면 <혼내는 역="">이라고 하면, 땅콩은 <바보>가 되는 셈이지만, 땅콩은 땅콩 나름의 통찰력이 있고, 인품이 있으며, 단지 고개만 끄덕이는 역으로 끝나지 않는 점이 좋다. 감씨의 공격을 척 받아서 날카롭게 되돌려 주는 경우도 있다. 감씨는 그런 점을 알고 있어서 자신의 역할을 어느 정도 과장되게 연기한다. 진정 절묘한 콤비라고 해야할 지, 호흡이 잘 맞는다. 그러니까, 변명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맥주를 마시면서 감땅을 먹고 있으면 끝이 없습니다요. 정신이 들면 한 봉지 가 완전히 비어있기 일쑤다. 거기다 (목이 말라오니깐) 맥주도 계속계속 마셔 버린다. 참 곤란한 일이다. 이렇게 되면 다이어트고 뭐고 될 리가 없다. 그렇게 뛰어난 식품인 감땅도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중 하나가 다른 사람이 끼어들면 감씨와 땅콩의 줄어드는 비율이 무너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우리 집사람은 땅콩을 좋아해서, 같이 먹으면 감씨 속에 섞여있는 땅콩만 쏙쏙 골라먹어서 그 결과로 감씨만이 남아있게 된다. 내가 그것 때문에 불평을 하면, <그치만 당신은="" 콩="" 종류는="" 싫어하잖아?="" 감씨가="" 많은="" 게="" 좋죠?=""> 라고 반문한다. 확실히 나는 땅콩보다는 감씨를 더 좋아한다. 그건 미리 인정한다. (난 대체로 단 것보다는 매운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감땅을 먹을 때는, 나는 내 안의 욕망을 가능한 한 억누르고 감씨와 땅콩을 되도록 공평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 내 속의 절반은 강제적으로 <감땅 분배="" 시스템="">을 확립해서 그 특별한 제도 속에서 소박한 개인적인 기쁨을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단 것과 매운 것이 있어서, 쌍방은 서로 협력하면서 살아간다고 하는 세계관을 재차 확인한다. 하지만 그런 복잡한 정신작업을 옆사람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솔직히 너무 귀찮은 일이다. 그래서 <아니 뭐,="" 그렇긴="" 하지만...=""> 하고 얼버무리면서 쭈뼛쭈뼛 감씨만 먹고 만다. 으음, 일부일처제는 어렵네요. 오늘도 감땅을 먹으면서 곰곰 그런 생각을 한다.

  • 2005/11/09 23:55 에 작성

results matching ""

    No results match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