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271034
<무라카미 라디오> - 저녁에 하는 면도
- 이 글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무라카미 라디오="">에 실린 글을 제멋대로 번역한 것입니다.무라카미>
예전에 (지금도 하고 있을지) 어떤 전기면도기 제조업체에서 아침에 출근하는 샐러리맨을 붙잡고 길거리에서 수염을 깎아주는 실연광고를 한 적이 있다. 새로이 깎여나온 자신의 수염을 보고 <방금 면도기로="" 깎고="" 나온="" 참인데="" 상당히="" 많이="" 남아있네요.=""> 라고 감탄하는 내용이었다. 광고니까 당연히 만들어낸 장면이겠지만 제법 리얼리티가 있었다. 나는 가끔 이 회사의 전기면도기를 쓰면서 이따금 광고와 정반대의 행동을 한다. 우선 전기면도기로 면도를 하고, 잠시 뒤에 다시 한 번 보통 면도기로 다시 깎는 것이다. 왜 그렇게 일부러 귀찮은 짓을 하지 않으면 안되느냐고? 우선 첫째로 한가하니깐. 둘째로 호기심이 있어서. 전에도 말했지만, 다시 말해 이런 타입의 인간이 소설가가 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순서로 면도를 해도 역시 덜 깎인 수염이 나오는 건 마찬가지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보통의 면도기와 전기면도기 어느쪽에도 면도하는 버릇이나 잘 깎이는 부분과 잘 안깎이는 부분 등이 있어서 각각이 깎이지 않고 남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아침에는 바쁘기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 면도를 했다고 해도 <시간을 들여서="" 완벽하게="" 면도를="" 마쳤다="">고 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광고는 한편으론 진실이지만 다른 한편의 진실은 결코 건들지 않는 게 아닌가하고, 에-, 그렇게 생각합니다. 설령 사소한 일일지라도 여러 시점에서 실증적으로 사물을 생각해 본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요. 나는 보통 아침에 한 번 면도를 하는 정도이지만 가끔씩 저녁에도 면도를 한다. 예를 들어서 저녁에 열리는 콘서트에 간다든가, 중요한 사람과 식사를 한다든가 하는 경우에. 나는 대체로 나이트 라이프를 하지 않는 농경민족 생활을 지내고 있어서 ??라고는 못해도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번 정도는 그런 일이 있다. 물론 귀찮다고 하면 귀찮지만 저녁에 면도하는 것은 나름대로 분위기가 있어서 <자, 이제부터 외출이군.>라고 새로운 기분이 된다. 적어도 아침에 하는 면도같이 의무적이고 습관적인 행위는 아니다. 거기에는 살아간다는 실감과 같은 무언가가 있다. 이럴 때는 역시 뜨거운 타월로 얼굴을 덥히고 세이빙 크림을 바른 후 면도기로 천천히 마음 편히 수염을 깎고싶다. 그러고나서 조심스럽게 얼굴에서 크림을 씻어내고 거울로 남은 부분이 있는지 점검한다. 애프터세이빙 로션을 바르고 살짝 느껴지는 따끔따끔함을 즐기면서 다림질을 막 마친 셔츠로 갈아입고 익숙한 쯔이-도(?)의 상의를 걸치고 구두를 신는다. 이럴 때 혹시 역 앞에서 <안녕하세요, 바쁘신데 죄송하지만 이 전기면도기로 한 번만 더 면도를 해보시지 않겠어요?>라고 말을 걸어온다면, 아무리 온후한 나라고 해도 <에이, 시끄러워. 저쪽으로 가!>라고 화를 내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시간을>방금>
- 2005/11/27 10:34 에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