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1010004

<무라카미 라디오> -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은

  • 이 글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무라카미 라디오="">에 실린 글을 제멋대로 번역한 것입니다.

레이몬드 챈들러의 소설 중에서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은="" 조금이나마="" 죽어가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대사가 있다. 나도 언젠가 한번쯤 그런 대사를 말해보고 싶다고 생각은 하지만, 너무 부끄럽달까 여간해선 맨정신으로는 잘 말하지 못하겠네요. 그렇다고 술에 취해버리면 잘못 말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 일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하지만 챈들러 씨에게 이의를 제기하고자 하는 건 아니지만, 사견을 말하자면 사람은 <안녕>이라고 말하는 직후에는 죽는 일이 거의 없는 법이다. 우리가 정말로 조금이나마 죽는 것은 자신이 <안녕>이라고 말한 사실을 몸 속에서 직면한 때이다. 이별을 고한 사물의 무게를 자기자신의 일로서 실감한 순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거기까지 도달하기에는 주변을 한바퀴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나 역시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적지않은 수의 사람들에게 이별을 고했지만 멋지게 작별인사를 한 기억은 거의 없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좀 더="" 나은="" 작별인사="" 방법이="" 있었을텐데="">하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후회가 남는다 - 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설령 후회가 남는다쳐도 그걸로 인해 살아가는 방식이 바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무책임한 사람인가를 다시금 실감하게 되는 건 분명하다. 사람이란 아마도 무슨 일인가로 갑자기 슥 죽어버리는 것이 아니고, 조금씩 여러 가지를 쌓아가면서 죽어가는 법이다.

예외적으로 훌륭하고 멋지게 작별인사를 한 이야기를 하자. 20세기 최후의 섣달 그믐날, 카우아이 섬의 노스쇼어에선 저녁해가 대단히 아름다웠다. 선명한 오렌지색의 덩어리가 산끝자락에 지금이라도 숨어버릴 듯이, 구름과 바다도 똑같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저녁노을을 바라보기 위해 목적지도 없이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이따금씩 브라이언 윌슨의 명곡 <캐롤라인 노="">가 흘러나왔다. 듣고 있으면 가슴이 뜨거워져서 잠시동안 말을 할 수 없었다.

20세기가 떠나가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았다. 단지 역사의 문제에 지나지 않지 않는가하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노래를 듣고 있는 사이에 <지금 이렇게="" 시간의="" 한="" 거대한="" 무리에="" 헤어짐을="" 고하고="" 있구나="">라는 기분이 저절로 생겨서 점점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처음으로 <캐롤라인 노="">를 들은 건 열여섯 살 쯤의 일로, 그때는 솔직히 말해서 곡의 좋은 점을 잘 몰랐다. 지금은 안다. 절실히 안다. 그런 상태에서 나의 20세기는 지나가고 있구나, 하고 실감했다. 물론 대단한 감동은 아니지만 내 나름으론 제법인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일로 해서 나는 20세기에 대해서 나름대로 배경과 음악도 갖춰서 개인적으로 훌륭하게 이별을 고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뭐, 가끔씩은 그런 일도 있긴 하다.

  • 2006/01/01 00:04 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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