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1182254
간단한 여행기 - 일본 센다이
16일부터 18일까지, 그러니깐 2박3일동안 일본 센다이에 다녀왔다. 목적은 논문 발표를 위한 학회 참석이었다. 물론 3년만에 해외 여행이니만큼 관광의 목적도 함께 있긴 했지만.
사실 외국에 혼자서 나가는 건 처음이라서 출발 준비를 하면서도 일말의 불안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여행 전에 통상 있는 기대감과 뒤섞여, 과연 어느 쪽의 비중이 더 큰지는 나 자신도 구분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논문 발표 준비라는 부담감까지도 한곁에 묻혀 있음에랴.
막상 도착한 센다이 공항은 기대했던 것보다 차분했다. 인천 공항을 출발했을 때보다 하늘은 맑았고, 겨울 특유의 낮게 깔린 오후의 태양이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행렬을 맞아주었다. ‘아아, 여긴 참으로 한산한 동네로군.’ 하고 감탄을 한 직후에 퍼뜩 공항은 보통 도시 외곽의 한산한 지역에 있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쳐 잠시 판단을 보류한다.
공항에서 약 40분간, 고속도로를 탔다고는 해도 그다지 빠르지 않게 달리는 버스를 타고 시내 중심가인 센다이 역 앞에 내리게 되었다.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은고로 호텔을 찾기 앞서 학회장 앞으로 가는 버스를 골라 탔다. 불과 10분 여간 그것도 꽤나 천천히 달려 도착한 학회장은 시내 박물관 바로 앞에 있었다. 처음 마주친 공항만큼이나 한산한 거리. 오가는 사람도 뜸하고 학회장과 박물관 주변은 높은 건물 하나 없이 나무들로 대부분 채워져 있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늦었기에 다른 사람들의 발표를 듣는둥마는둥 (실은 발표 내용이 정말 재미없었던 탓이 더 크긴 하지만) 다시 센다이 역으로 돌아와 이번에는 호텔을 찾기 시작했다. 우리 나라 수도권에 비해 위도가 높은 탓에 해가 낮고 짧은 센다이 시에서는 오후 5시가 넘어가면서 어둑어둑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타고난(?) 방향 감각을 원망하며 간신히 호텔 앞에 도착한 건 6시가 넘은 시각. 짐만 간단히 풀고 나서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다시금 역으로 향한다.
첫날 저녁은 도심 상가의 방향을 아는 데만 두어 시간이 걸렸다. 거리 한 쪽 끝에 도달해서 한참 전에 무심코 지나친 가게를 다시 찾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 발길을 돌리면, 내가 지나온 그 길은 어디론가 사라졌는지, 어딘가 기억에는 남아있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없는 얼핏 낯익은 풍경들만 눈앞에 쏟아진다. 어쩌면 그날 거리에서 가게 광고 휴지 등을 나누어 주던 파카 입은 여러 사람들은 자기 앞을 수차례 지나가면서 두리번거리는 코트 입은 남자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둘째날의 학회는 내게 있어서는 더욱 심각해서, 오전에 있는 나의 논문 발표를 마치고는 더 있을 생각이 싹 사라져 버렸다. 비록 비싼 등록비가 아깝기는 하지만, 이를 위해 일년에 얼마 없는 금같은 휴가를 사흘이나 쪼개서 온 생각을 하면, 따분한 발표를 들을 기분따위는 저멀리 사라질만 하니 스스로를 용서하련다. (실은 본인 발표에 사람들 반응이 별로 없어서 삐친 상태였음.)
그래도 멀리까지 와서 무언가 하나는 보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하는 마음에 가장 무난할 것 같아 선택한 곳이 옛 센다이(아오바) 성터. 학회장과 마주한 박물관에서 15분 정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인데다 사실 센다이에 딱히 대단한 구경거리가 있어보이지는 않은 터라 가볍게 산책 겸 둘러보고 오자고 생각한 것인데, 이것이 또한번 나를 애먹일 줄이야. 오르막을 따라 천천히 걸어서 성채가 있는 중턱까지 오른 건 좋은데, 반대편으로 넘어가서 버스를 타겠다고 마음먹고 내리막을 따라 걷기를 30여 분. 도저히 버스 정류장이 나올 것 같지 않아서 지나가는 대학생(아마도)을 붙잡고 물어본 덕에 간신히 센다이 역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잡아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돌아온 시간은 오후 6시를 넘겼고, 해는 이미 산넘어 돌아가신지 오래였다.
식사는 일본 서민답게! 라는 모토 아래 길거리 덮밥집의 문을 열었고, 역주변을 돌면서 서점과 음반점과 이런저런 구경거리 - 심지어는 중고 만화, 책, 잡지, DVD, 게임 등을 사고파는 가게까지 발견했다! - 를 찾아다니며 아픈 발에 피곤함을 더했다. 무언가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사보자고 마음 먹었지만 어째서인지 눈을 사로잡는 무언가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어째서일까, 고민을 해보았지만 결국 답은 이튿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찾았으니.
마지막 날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하며 내려다 본 거리는 언제나처럼 비교적 한산했다. 저녁 시간의 화려한 센다이 역 앞 거리도 아침 햇살 앞에서는 여느 동네 거리처럼 활기있는 사람들만 북적였다. 시내 버스에서 내리면서 이제야 버스 요금 내는 방법에 익숙해졌는데, 하는 기묘한 아쉬움이 마음 한켠을 붙잡는다. 우리 나라 도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풍경. 친절한 것 같지만 별로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못한 거리의 사람들. 만약 홀로 다시 와서 생활을 하게 된다면 적응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겠지만 어딘가 다소 심심한 삶을 살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틀만에 자신이 도시에 녹아들어 버린 듯한 느낌이 난데서야 어디 외국에서의 삶이라 부를만 할까.
센다이 공항을 거쳐 돌아오는 길에 전날 느꼈던 거북함의 원인을 찾았다. 왜 나는 무언가 사고 싶어하면서도 선뜻 그러지 못한 걸까. 아, 지금과 다른 것을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구나. 지금 내가 듣고 있는 음악도, 읽는 책도, 여가 시간에 하는 일들도 모두 몇 년 전부터 별로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구나.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원해도 항상 막연하고 막상 그 앞에 다가서면 무엇을 골라야 할 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억지로라도 지금까지 내게 없던 것을 찾아야겠다. 가보지 않은 곳도 가보고, 들어본 적 없는 노래도 들어보고. 전혀 연고없는 도시에 홀로 떨어져 짧은 시간이지만 헤매기도 하고 부딪혀도 본 것처럼 한국에 돌아와서도 내가 갖지 못했던 무언가를 구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내 내 머릿속을 휘감는다.
덧) 사진 찍는 일을 워낙 싫어하는 터라, 아쉽지만 여행의 사진은 “한 장도” 없습니다.
- 2006/01/18 22:54 에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