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7162211
부디 그 땅으로
아마도 언젠가 <혼불>에서 읽은 내용을 따로 발췌해놓았던 것 같다.혼불>
사람들은 흔히 누구를 만나 수인사 통성명을 할 때 ”본이 어디냐?” 고 묻는다. 그러면 으레 그 대답으로, 조선 팔도 삼천리 강산 어느 곳엔가 엄연히 실재하는 동네 지역 이름을 대어 말하기 마련이다. 가령 ”파평(坡平)이요.” ”달성(達城)이요.” ”광산(光山)이요.” ”안동(安東)이요.” ”진주(晋州).” 라고. ’본(本)’이란 글자 그대로 ‘근본’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한 몸 존재의 근본. 나의 근본이 되시는 분이, 내 성씨 앞에 붙인 지명의 땅에서 ”인간적인 일을 했다.” 하는, 기림을 이 말은 담고 있다. 가령, 그곳이 저 경기도 연천군(連川郡)의 북쪽에 있는 삭녕(朔寧)이라 할 때, 덕망 있고 훌륭하신 성씨의 맨 처음 어른이 여기 ”삭녕에서 인간을 이루었다.” 하는 것이 곧 ‘본’이다. 그러니, 단순히 시조의 탄생지를 기념하거나 다른 성씨와 구분하기 위한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한 성씨의 시조가 되실 만큼 어질고 크신 어른의 덕행과 학문, 정신을 훼손 없이 이어받자는 각오로 관향, 본을 쓰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본을 굳이 제 이름 성씨 앞에 밝히는 뜻은 ”삭녕에서 그분이 사시던 모습을 그대로 이 몸에 이루리이다.” 하는 결심과 다짐이요, 자신이 그분의 자손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표시다. ”이 세상에 근본이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혹자는 훗날에 오다가 잃거나 잊어 버릴 뿐. 허나, 근본을 모르고서야 뿌리 없는 줄기가 어떻게 창창히 뻗어 나가며 가지는 또 어떻게 우거질 것인가. 하물며 열매야. 내가 오늘 우리 성씨의 수수만만 잎사귀 중에 한 이파리로서, 내 조상의 맥을 짚어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나아가 곧 겨레의 맥을 짚는 일과 꼭 같은 것이다. 그 둘은 서로 별개가 아니라 바로 한 몸의 조직, 이 손과 저 손의 엽맥인 것이다. 그 맥들이 모여 우리 민족의 역사 세포와 모세 혈관, 힘줄, 근육, 그리고 뼈와 살을 이루느니. 우리는 자기 자신 하나하나에 대하여 진정한 존재 자각을 지엄하게 가져야만 한다. 제군들이여. 우리는 외톨이가 아니다. 또한 외톨이여서도 안된다. 기댈 데 없고 매인 데 없는 외돌토리는 생명의 유기체 속에서 그만 피돌기가 막히고 끊어져 겉돌아 버린다. 나만 그렇게 끊어지고 마는가. 내가 끊어지면서 불행히 남의 것도 끊어 놓는다. 그 외톨들로 가득 찬 강토는 단 한 톨의 씨앗도 품을 수 없고, 실뿌리 하나 뻗을 수 없는 박토, 각동배기로 떠글거리는 삭막한 돌짝 자갈밭에 불과할 터인즉. 비옥한 미래를 어이 꿈꾸랴. 내 조상을 잊지 않는 것이 나를 잇는 길이다. 우리는 조상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 그리고 우리가 이 훗날, 어느 누군가의 조상이 될 때, 자손에게 어떤 존재로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 우선 이 자리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제군들, 각자의 관향이나 고향, 혹은 시방 살고 있는 주거지의 내력과 설화를 조사해 보도록 하라. 마을의 유래, 유적(遺跡)을 찾아보라. 조상의 땅에까지 갈 수 없는 사람은 멀리 갈 것 없이 자기 동네 우물가 버드나무는 누가 언제 심었는지, 저절로 났는지, 지금 이 동네 이름은 왜 그렇게 지었으며 언제부터 불리기 시작했는지, 또 이곳이 예전에는 무엇을 하던 어떤 곳이었는지, 맨 처음 이 동네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사람은 누구였으며, 그는 어느 곳에 터를 잡았는지, 그가 살던 그 집은 아직도 그대로 있는지, 섬세한 지도를 그려 보기 바란다. 그리고 그것을 적어 놓아라. 실없어 보이는 이 면밀한 그림이 바로 당대의 기록이요, 후대한테는 소중한 유산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반드시, 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그대들의 성씨 관향에 가 보기 바란다. 그곳이 그대들의 성지(聖地)이다. 그 성지를 순례해 보면, 오늘보다 더 구체적이면서 절실한 이야기가 얼마든지 생생하게, 질기게, 거룩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웅혼하고 지혜로운 지형의 기맥과 울분의 용틀임, 들꽃 같은 어여쁨, 아쉬워 고개 숙인 인생의 애잔함, 그리고 끝없는 좌절과 소망의 회오리 숨결들이 점점이 고을 고을 새겨진 골목길들을 결코 놓치지 말라. 붙잡으라. 그 이야기와 삶의 흔적들을 지금 우리가 놓치면, 이제는 아무도 못 찾는다. 끝내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국토와 마을과 집안마다 흘러내리는 이 숨결과 이야기를, 갈피마다 주워 담아 품고 길러서,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인지도 모른다.
<중략>중략>
제군들이여. 사람의 한평생에 길떠날 일이 많다 하나, 일본으로, 중국으로, 아라사로, 미리견으로, 구라파로, 드넓은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활약하고 다닐지라도, 한 점 내 존재의 씨앗이 비롯되었던 본관 근원지에 못 가보고 만다 하면, 이 아니 허퉁한 일이겠는가. 씨앗 없는 과일 같은 것이리라. 자두·사과·복숭아·수박, 그 맛난 과육을 사람이 다 먹어 치운다 해도, 씨앗을 먹히지 않는 한 그것들은 다시금 온전히 나무와 넝쿨로 살아나 번창할 것이다. 잃은 것은 살, 잠시일 뿐. ”그대들은 그대들의 씨앗 속으로 돌아가 보라.” 고 심진학 선생은 말했었다. ”부디 그 땅으로.” 라고도.
<후략>후략>
이미 너무 늦은 걸지도 몰라.
- 2006/07/16 22:11 에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