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1260935

토요일 아침 잡담

간단히 아침밥을 해먹고 잠시 느긋하게 앉아서 재즈를 들으면서 문득 내가 재즈를 접해온 일상을 써보고 싶어졌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주절주절 써내려가 보겠다.

지금 듣는 음악은 아래 사이트에서 방송되고 있다. http://www.jazz.fm/JazzFM91_Player.htm

색소폰을 잘 부는 초등학교 동창이 추천해 준 사이트이다. 작년 말에 간만에 만났을 때 우연히 재즈를 좋아한다고 얘기했더니 잊지 않고 있다가 메신저로 알려주었다. 페이지에는 덜렁 로고와 미디어 플레이어 하나만 있어서 무척 간소하다. 하지만 마치 라디오 방송처럼 하루종일 재즈를 들을 수 있어서 화면 구성 대비 최고의 성능을 보여주는 사이트가 아닐까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우리 나라 웹사이트 중에서 이정도의 순도를 보여주는 곳은 절대로 없다고 장담할 수 있다.

재즈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교때 우연히 일본의 퓨전 재즈 그룹인 T-Square의 앨범을 다운받아 들어봤을 때다. 가사 없이 흘러나오는 편안한 가락에 푹 빠져서 더 많은 T-Sqaure의 곡을 찾아듣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오래된 스탠다드 재즈가 아닌 퓨전 형식의 재즈를 먼저 들었으니 입문한 경로는 참 비정상적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T-Square는 일본 문화 특유의 엄격함이 녹아든 탓인지 악보에 충실한 연주로 이름높았으니 자유로움을 밑바탕으로 하는 재즈의 본질과는 얼마간 거리가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후에도 Casiopeia 같은 일본 퓨전 재즈 그룹, 또는 이따금 학교에서 공연하는 유럽 출신 재즈 밴드의 연주를 들으면서 재즈에 조금씩 더 빠지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막연히 좋아하는 음악 장르로 재즈를 꼽기는 했지만 어떤 지식이나 감각도 없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선뜻 이야기하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이전부터 재즈를 좋아해서 즐겨듣거나 한 적도 없었으니.

이후로 별다른 발전이 없다가 회사에 들어와 어느날 서가에서 “강모림의 재즈 플래닛”이라는 책을 발견하고 빌려 읽게 되었다. 본래 만화가였던 작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재즈 뮤지션, 관련 영화, 재즈의 역사에 대해서 철저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보고 쓴 글이었다. 각 장마다 직접 그린 캐리커쳐도 곁들여서. 내용은 상당히 재미있었고, 재즈를 모르는 사람도 ‘한번쯤 들어볼까?’하고 솔깃해 할 만큼 제법 맛깔나는 책이었다. 덕분에 역사적으로 유명한 연주가들에 대해서도 제법 (최소한 이름 정도는) 알게 되었고, 마음 한켠에 재즈에 대한 관심이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에 서점에서 그 책을 샀는데, 작년에 내 방에 놀러온 누나가 보고는 냉큼 빌려가 버렸다. (두바이로)

그 후에도 두어권 더 재즈에 대한 책을 읽었다. 하지만 점차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글을 통해 머리속에 지식을 채우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직접 듣고 몸으로 부딛혀야만 재즈가 진정 내 삶에 의미가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 재즈를 취미로 갖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우선 피아노를 배우는 일부터 시작했다. 피아노를 배우는 이유 중 하나는 인생을 살면서 악기 하나쯤 다루고 싶기 때문이다. 수많은 악기 중 굳이 피아노를 선택한 이유는 이미 어릴 적 한번 배운 적이 있는데다 대중적인 취미인만큼 어디서든 칠 장소는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악기를 선택할 경우 직접 악기를 사야하기 때문에 비용이 만만찮다는 점도 크지만. 피아노를 배우는 또 한가지 이유는 좋아하는 재즈곡을 언젠가 피아노로 연주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초보 단계라 기초 연습부터 차근차근 밟아야 하지만, 이렇게 몇년간 꾸준히 연습하다보면 스피커로 들어만 보았던 멋진 재즈 음악을 직접 연주할 기회가 있지 않겠는가? 상상만 해도 뿌듯해진다.

맨 위에서 언급한 친구는 오랫동안 색소폰을 불어서 음대 출신이 아님에도 군악대에서 복무를 하고, 외국에도 종종 나가서 알게된 음악 친구들과 함께 길거리 연주도 했다고 한다. 언젠가 자신의 연주를 녹음한 파일을 보내주어 들어보았는데 아마추어로서는 정말 훌륭한 실력을 갖추었다. 작년에 만났을 때 내가 재즈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피아노 배우는 것도 같이 이야기했더니 언젠가 자기랑 같이 연주해보자고 하였다. 물론 내가 그정도 실력을 갖추려면 얼마나 더 연습을 해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즐거운 일이 아닌가? 또 엊그제는 같이 홍대의 재즈 클럽에 가자는 쪽지를 보내왔다. 신촌에 일년 가까이 살면서 홍대 근처에는 가본 일이 거의 없는데, 오히려 수원에 사는 친구가 더 잘 알고 있다. 나 혼자였다면 평생 그런 곳에 가볼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내가 아직까지 몰랐던 또다른 모습의 재즈가 있을 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 2008/01/26 09:35 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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