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1260946
"그런 의리(義理)는 없어!"
이전에 쓰다가 도중에 그만둔 글.
이전부터 일본 만화 또는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종종 접하는 대사 중 “그런 의리는 없어!”라는 표현이 있다. 내 기억으로는 대부분의 번역이 위처럼 직역된 경우인데, 우리 말뜻으로 생각하면 약간 어색한 느낌이 있다. 그떄는 그냥 적당히 넘어갔는데 루스 베네딕트의 명저 “국화와 칼”을 읽다보니 “기리(의리)”라는 단어의 의미를 잘 설명해 놓아서 아래 옮겨본다. 이 설명대로라면 왜 특정 상황에서 위와 같은 표현이 쓰이는 지도 이해할 수 있겠다.
어떤 일본어 사전의 설명 - 내가 번역한 - 에 의하면, ‘기리(義理)’는 ‘올바른 도리, 사람이 좇아야만 될 길, 세상에 대한 변명 때문에 본의 아니게 하는 일’로 되어 있다. 이런 설명으로는 서구인은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본의 아니게(unwillingly)’라는 말이 ‘기무(義務)’와의 다른 점을 보여 주고 있다. (중략) 왜냐하면 현재에 와서는 ‘기리를 갚는다’는 것은, 이미 자신의 정당한 수령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온갖 종류의 사람에 대한 온갖 종류의 의무를 이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끊임없이 쓰여지는 표현은, 혐오와 함께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기리’를 행하도록 강제하는 세상 여론의 압력으로 차 있다. 그들은 “나는 오로지 ‘기리’ 때문이 이 결혼을 결정하고 있다.”라든가, “단지 ‘기리’ 때문에 저 남자를 채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든가, “나는 오로지 ‘기리’ 때문에 저 사람과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기리’에 얽매여 있다.”라고 말하는데, 이 표현은 사전에선느 “I am obliged to it (할 수 없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번역되어 있다.
‘기리’ : 자신이 받은 은혜와 같은 수량만을 갚으면 되고, 또한 시간적으로도 제한된 부채
1. 세상에 대한 ‘기리’ 주군에 대한 의무. 근친에 대한 의무. 타인에 대한 의무. 그 사람에게서 받은 ‘온(恩)’, 이를테면 금전을 받았거나 호의를 받았거나 또는 일에 도움을 받았거나 협동 노동의 경우처럼 한 경우에 기인하는 것. 먼 친척(아주머니, 아저씨, 조카, 조카딸)들에 대한 의무. 이것은 특별히 이들로부터 ‘온’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온’을 받았다는 데에 기인하는 것.
2. 이름에 대한 ‘기리’ 사람으로부터 모욕이나 핀잔을 받았을 때, 그 오명을 씻는 의무. 즉 보복, 또는 복수의 의무(이 갚음은 불법적인 공격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자신의 실패나 전문적인 일에 대한 무지를 인정치 않는 의무 일본인의 예절을 다하는 의무. 이를테면, 모든 예의 범절을 지킬 것, 신분에 맞지 않는 생활을 하지 않을 것, 함부로 감정을 나타내지 않을 것 등.
– <국화와 칼 - 일본문화의 틀>,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윤식, 오인석 옮김, 을유문화사
- 2008/01/26 09:46 에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