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2242337

글을 얼마나 빨리 쓰시나요?

재작년 이후로 한동안 블로그를 버려두었다가 요즘 들어서 가끔씩 글을 쓰고 있다.

어릴 적에는 일기다 독후감이다 논술이다 해서 글을 쓸 기회가 종종 있었는데,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는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장문의 글을 작성할 일이 거의 없다. 게다가 회사에서 쓰는 보고서는 모두 짤막짤막하게 단어 나열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블로그에 쓰는 글처럼 완전한 문장을 만들 일이 없다.

문제는 글쓰기도 연습이 필요한 것이라 그런지 오랫동안 안쓰면 쓰는 법을 잊어버린다는 점이다. 특히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작문 속도인데, 글 하나를 써서 올리기 위해서 예전에 비해서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최근 영문 에세이를 쓰면서 시간을 재어본 경험으로는, 30분간 대략 영단어 300 ~ 340 단어 분량의 글을 쓰는 것 같다. 국문으로 쓸 경우는 어느 정도인지 재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다만 영문 에세이는 형식이 정해져 있고 쓰는 패턴이 일정해서 대체로 비슷한 분량이 나오는데 비해, 국문으로 일상 생활에 대해 글을 쓰면 그때그때 속도가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에세이 작성보다는 좀 더 빨리 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무래도 영작문이 더 어려운데다 에세이의 경우는 논리와 문장 구조를 따져가면서 써야 하기 때문에 문장 하나를 만들 때도 좀 더 고민하게 되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논술 작문을 하면 보통 2,000자 또는 3,000자 분량의 글을 작성하게 되는데, 그시절에는 지금보다 훨씬 술술 써내려갔던 느낌이 든다. 별로 고민할 필요가 없는 주제여서 그랬는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 머리가 많이 굳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3년 동안의 공백이 상당히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어른이 되어서 새삼 느낀 건, 내가 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저 친구들과 편하게 대화를 할 떄라면 모를까, 논리적으로 의견을 표현해야 할 상황에서 말 한마디를 내뱉는데도 상당히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머릿속에서 문장을 만들고 표현을 다듬어서 내보내야 하는데, 워낙 동작이 굼뜬 것이 혀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대체로 다른 사람들보다 한박자 늦게 입에서 튀어나온다. 게다가 종종 이미 한 말 중에서 더 알맞은 표현이 떠올라서 같은 뜻의 단어를 재차 말할 때도 종종 있다. 마치 말을 더듬는 사람처럼.

다행히 글쓰기는 말하기와 달라 충분히 생각을 하고 다듬을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글로 설명하는 쪽이 더 편하다. 하지만 요즘같이 속도가 생명인 세상에서는 뭔가를 쓰는 것조차 시간의 제약을 받기 마련인지라, 글쓰는 것 역시 제한된 시간 안에 얼마나 잘 쓸 수 있는가가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최근 연습하는 에세이 작성도 30분이라는 제한 시간을 두고 있다.

단테는 <신곡>을 평생에 걸쳐서 썼다고 하지만, 문학 작품처럼 특이한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어떤 곳에서든 시간의 제약은 있기 마련이다. 나는 지금까지 입이 느려서 손에 의존했는데, 이제는 손마저도 빨리빨리 움직여야 하는 처지가 되어 참으로 괴롭다.

  • 2008/02/24 23:37 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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