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161503
감상문 -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 (Perspetives in Western Civilization)
어릴 적 학교 숙제로 독후감을 쓰라고 하면 죽도록 싫었다. 그당시는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줄거리를 대충 쓰면서 중간중간 한 문장씩, “주인공이 ~~하다니 참 슬펐다.” 라든지, 위인전의 경우는 “나도 본받아야겠다.” 라는 식의 성의없는 표현으로 눈가림을 하곤 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책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감정을 조금씩 표현할 수 있었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고등학교 때 읽은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이 더 먼저였던 것 같다. 물론 당시는 감수성에 넘치는 질풍노도의 청소년 시기여서 사랑 이야기에 감동받았던 걸지도...좁은>
서론이 길었는데, 갑자기 독후감을 쓰려고 마음먹은 건 지난 주에 읽은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라는 역사책이 정말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이 책이 의미있는 이유는 최근들어 역사책에 대한 관심이 많이 시들해진 상태에서, 모처럼 흥미있는 읽을거리였기 때문이다. 대학교에 다닐 때부터 역사에 관한 책은 꾸준히 읽었지만, 요즘 들어 많은 역사서들이 비슷한 패턴으로 이루어져 있어 흥미를 다소 잃은 터였다. 그러던 차에 간만에 예전의 입맛을 되살아나게 해 준 책이다.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라는 제목이 나타내는 대로, 첫 장은 그리스의 음유시인 호메로스로 시작하여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이르기까지 고중세 유럽 역사를 설명한다. 단순히 연대별로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대의 중심 인물 또는 사건을 마치 소설을 쓰듯이 서술하고 있다. 명역사가 치고 명문장가 아닌 사람이 없다더니 과연 문장은 물 흐르듯 이어지고 (번역본임에도 불구하고) 문단 구성도 탄탄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는 투르크 술탄에 의해 함락되는 비잔틴 제국의 최후를 다룬 문단과,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이 함락한 베네치아 공국의 마지막을 묘사한 부분이다. 문단 자체는 한 페이지 남짓 될만한 짧은 분량이지만, 훌륭한 소설의 에피소드를 읽고 난 듯한 여운을 남겨주었다. 게다가 한 국가의 쇠락과 멸망은 일종의 비장함을 느낄 수 있어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이 책의 2권은 같은 번역자가 <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라는 이름으로 출판하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아마도 르네상스 이후 근현대 유럽을 다룰 것이다. 다행히 서가에 나란히 있어서 1권을 반납하고 바로 빌렸다. 고대의 신비함과 중세의 로망스가 사라진 이후의 다소 현실적인 세계가 배경이라 1권에 비해 어느 정도 재미있게 읽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신선한 역사책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상당히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 2008/03/16 15:03 에 작성 뉴턴에서>호메로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