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201313
미묘한 기분
본격 쓰레기 소프트웨어 열전 ACAN(9) - T store
저 이름은 작년 이맘때까지만 해도 나에겐 꽤 복잡미묘한 존재였다. 유학을 결심하고 회사엔 비밀로 한 채 열심히 준비를 하던 시절 담당했던 프로젝트가 바로 T스토어의 전신이랄 수 있는 모바일 위젯 시스템이었다. 일종의 베타테스트 형식으로 시스템을 오픈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앱스토어를 만드는 청사진이었다.
내 얼굴에 침뱉은 얘기긴 하지만, 까놓고 말해 위젯 시스템도 참 거지같이 만들어지긴 했다. 내부 사정상 나름 복잡한 이유가 있긴 했지만. 3개월여만에 개발을 완료해야 하는 일정으로 언론 발표까지 땅 해버리니 달리 방법이 없는 거다. 최초 베타 시스템 개발 당시 사업팀, 단말팀, 서버팀(나) 세 담당자와 개발업체 PM이 오픈 하루전까지 삽질을 거듭하며 마쳤고 덕분에 담당자들 사이에 친분은 나름 쌓였달까.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큰 시스템도 아니었고 베타 서비스란 명목으로 공짜로 제공한 서비스라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위젯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하면서 뭔가 삐걱댐을 느끼기 시작했다. 예산도 늘고 서비스 기능도 늘고 담당자도 늘었다. 일정의 압박은 더 심해졌고 그로 인해 개발팀과 사업팀의 마찰이 공공연해졌다. 개발팀 담당자로서 어떻게든 방어를 해보려 했지만 역부족. 요청했던 개발 기간은 반토막이 나고 첫번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비참한 상황에서 질질 끌려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 개발업체 PM분들에게는 참 면목없는 일이었다. 열정도 책임감도 있는 분들인데.
그렇게 두번째 프로젝트가 끝나자마자, 애플스토어의 광풍이 몰아닥쳤고, 결국 위젯 서비스는 무언가 덕지덕지 붙은 채 T스토어라는 이름을 달고 세번째 런칭을 준비한다. 어찌보면 개인적으로 참 다행이었달까, 내가 유학을 완전히 결심하고 슬슬 맡고 있는 일을 줄여나가려던 시기와 비슷하게 맞물렸다. 아마 회사에 계속 남았더라면 프로젝트를 거절할 명분도 동기도 없었겠고, 결국 그속에 발을 담갔을거다. 사람은 없고 일의 흐름상 딱 시키기 좋은 사원이었으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적기는 곤란하지만, 참으로 눈치없고 굼뜬 나한테도 ‘저기 발담그면 X된다.’라는 것만은 확실하게 와닿았다. 이런저런 핑계로 슬금슬금 참여를 미루다 결국 퇴사를 알리고 나왔고, 그 이후로는 어떻게 개발이 진행되었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분위기상 대충 어떻게 흘러가겠구나하는 감은 들었다.
회사를 떠난지 근 일년만에 저 이름을 다시 보게되니 (그것도 성토를 당하는 처지로) 기분이 일면 씁쓸하면서 일면 묘하다. 더군다나 비교되는 두 프로그램이 한쪽은 내가 예전에 몸담았던 곳이고 나머지 하나는 잠깐이나마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현재 직장이다보니 더더욱.
나는 두 프로그램을 모두 안써봤으므로 직접 말할 수는 없지만, 양쪽 회사에서 일해본 경험상 어떤 차이가 있을지 대강 짐작은 된다. 소프트웨어 품질의 차이를 만드는 원인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수도 없이 많은 답안이 있겠지만, 딱 이 경우에 한정해서 구체적이고 영향력이 있는 원인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일정 수립에 대한 엔지니어의 권한”
을 들고 싶다.
덧) 그때 죽도록 고생한 협력 업체 사람들에겐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무능한 담당자가 제대로 쉴드도 못쳐주고. 프로젝트라도 깔끔하게 끝나고 휴식기간이 있어서 저녁대접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도망치듯 나와버렸으니.
- 2010/07/20 13:13 에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