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독서 목록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역사책을 왜 읽느냐고 묻는다면 다양한 답변이 나올 것이다.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기 위함일 수도 있고 교양을 쌓기 위함일 수도 있다. 아니면 시험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하지만 그런 실용적인 이유를 제쳐두더라도, 역사를 아는 일은 일단 “재밌다.”그게 무슨 소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역사라는 단어에 실린 무게감을 벗어놓고 생각해보면 그 본질은 “옛날 이야기”다. 이 땅에서 우리 조상님들이 살았던 이야기. 이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들을 앉혀놓고 옛 이야기를 해주는 풍경을 보기 어려워졌지만, 역사책이 얼마간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면 조금은 아쉬움이 덜할 것이다.이야기하듯 역사를 알려주는 형식의 책으로 기억에 남는 것 중에 윤승윤 화백의 <맹꽁이 서당=""> 시리즈가 있다. 서당 훈장님이 학동들에게 항상 "선대왕 이야기를 해주마..."라는 대사로 시작을 하는데 유쾌한 그림체와 적절한 해학이 섞여서 꽤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법은 다르지만 만화라는 점에서는 최근 완결된 박시백 화백의 <조선왕조실록>도 비슷한 부류에 낄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전자가 정사와 야사를 적절히 섞어서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다면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거의 대부분 실록이라는 왕실 사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따금 관련된 야사의 내용을 곁들여 소개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런 이야기도 있었다"는 수준에 그친다.나는 모처의 서가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다. 저자에 대해서는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지만, 이 우연한 만남 덕분에 또 한번 알찬 역사책을 알게 되었으니 참 행운이다. (살다보면 종종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우연히 얻은 것이 더 만족스러운 때가 많다.)전 20권으로 이루어져 있고 마지막 권인 <순종 실록="">이 두 달 전에 출판되었다. 실록의 분량이나 임금의 업적에 따라서 한 권에 한 명 또는 두 명씩 소개를 하고 있다. 프로 만화가들과 비교할 정도로 대단한 그림은 아니지만 읽기 편한 수수한 그림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작가가 관모나 의복 등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서 그리는데다 모든 주요 등장 인물들이 개성있게, 그리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적절히 변모하여 그려지는 점이 퍽 마음에 들었다. 한 인물의 젊은 시절과 노년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정말 이렇게 변하겠구나 싶도록.사실 조선왕조실록이 위대한 기록 문화 유산이고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이야기는 자주 듣지만 정작 내용을 들여다보기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아무래도 방대한 분량도 분량이거니와 기본적으로 한자로 적힌 (번역본도 있지만) 딱딱한 사료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해도 아는 이가 없으면 의미가 없지 아니한가.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책은 저자가 마치 어미새가 새끼에게 하듯 그 딱딱한 텍스트를 고되게 씹고 소화시켜 부드러운 만화로 탈바꿈시킨 작품이라고 해야겠다.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점은 조선시대를 이야기하면서도 이시대의 정치 상황과 모순을 군데군데 투영하려 애쓴 점이다. 비록 대단한 풍자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단순히 수동적인 이야기 전달자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사람으로서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하는 고민이 엿보이는 부분이다.그리고 이런 모든 평가를 떠나서, 처음 말한대로 일단 재밌다. 만화로서 보아도 재미있고 역사서로 보아도 그렇다. 사실 만화로 그린다고 다 재미있는 것도 아닌데 이 점 하나만으로도 꽤 괜찮지않나.500년 역사는 완결이 되었지만 개인 사정상 후반부를 아직 읽지 못했다. 처음 이 책을 발견하고 죽 읽어왔던 모처의 서가도 더이상 이용하기 어려울 듯 하여 전권을 살 계획이다. 이로써 내 방의 임시 책장에는 만화책이 절반을 넘어가게 된다. 뭐 만화면 어때.

  • 2013/09/24 21:04 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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