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2311723
<무라카미 라디오> - 사랑하는 사람처럼
- 이 글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무라카미 라디오="">에 실린 글을 제멋대로 번역한 것입니다.무라카미>
특정한 상황이 되면 반드시 머릿속에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예를 들어서 하늘이 청명한 밤에 별들을 올려다보면, <사랑하는 사람처럼(Like Someone in Love)>라고 하는 오래된 노래가 입가에 맴돈다. 재즈 쪽에서는 잘 알려진 스탠다드 곡인데, 알고 계신가요?
요즈음 휙 정신을 차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홀로 별을 지긋이 바라보거나 기타의 음조에 귀를 기울이게 되네 마치 사랑을 하는 사람처럼
사랑을 하게 되면 그런 일이 벌어진다. 의식이 어째선지 기분 좋은 영역을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니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잊어버린채 퍼뜩 정신을 차리면 오랜 시간이 흘러있는. <무언가를 생각하면 사람이 부를때까지(정확한 번역이 아님)>라는 일본 노래도 있는데, 그것과 같은 것이다.
생각해보면 사랑을 하는데 가장 좋은 나이는 열여섯에서 스물한 살정도가 아닐까? 물론 개인마다 차이는 있으므로 간단히 잘라말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 어리면 뭔가 어린애들 장난같아서 보고 있자면 웃음이 나올 것 같고, 반대로 20대가 되면 현실적인 굴레에 갇히게 된다. 좀 더 나이대가 높아지면 쓸데없는 지혜따위가 붙어버려서, 뭐 그런거죠.
하지만 10대 후반의 소년소녀들의 연애에는 기분 좋은 바람이 지나가는 기분이 든다. 심각한 사정같은 건 아직 모르기 때문에 실제적인 면에서는 정신없는 경우도 있지만 그만큼 신선하고 감동으로 가득차있다. 물론 그런 날들은 눈깜짝할 순간에 지나가 버리고 정신을 차리면 이미 영원히 잃어버리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기억만큼은 생생하게 머물러 있어서 그것이 우리들의 남은 (아픈 일이 많은) 인생을 제법 따뜻하게 해준다.
나는 죽 소설을 써 왔지만, 무언가를 쓰는 일에도 그러한 감정의 기억이라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설령 나이를 먹더라도 싱그러운 풍경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몸속에 난로를 담고 있는 것과 같이, 그다지 춥게 나이들어 가지는 않는 법이다.
그런 연유로 귀중한 연료를 쌓아두기 위해서도 젊을 때 부지런히 사랑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재산도 중요하고 일도 중요하지만, 진심으로 지긋이 별을 바라본다든지 기타의 음조에 미친듯이 열중하는 시간이란 인생에 진실로 얼마 없는 것이며 또한 무척이나 좋은 것이다. 넋놓고 있다가 가스불을 끄는 것을 잊어버리거나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일도 가끔은 있을 수 있지만.
- 2005/12/31 17:23 에 작성